성연이 2014. 4. 6. 11:44

모든 감정에 숨겨져 있는 동반자.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찰스는 성적 욕망만이 아니라 낭만과 모험, 죄악, 광기, 야수성 같은 금지된

모든 것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채우려 한다.

 

스피노자-욕망이란 인간의 본질이 주어진 감정에 따라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도록 결정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자체이다.


욕망은 자신의 의식을 동반하는 충동이고 충동은 인간의 본질이 자신의 유지에

이익이 되는 것을 행할 수 있도록 결정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에서 윤리학을 시작하려고 할 때 스피노자는

윤리학을 욕망에서부터 출발시켰다.

결국 이성의 윤리학은 사회의 윤리학이지 살아 있는 자의 윤리학일 수는 없다.

만일 욕망이 억제되고 끝내 실현할 수 없다면 살아도 죽은 것과 같다.

모든 타자가 우리의 삶에 이로움(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욕망이 작동하는 방식은 슬픔의 감정은 피하고 기쁨의 감정은 선택하는 것이다.

비극은 우리의 나약함에 있다. 욕망과 비겁함 사이에서 노예를 선택할 수도

있고 순간의 안위때문에 자신의 본질을 놓치며 살 수도 있다.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다. 

흉내를 내는 것은 엉터리인 것이다.

 

냉소와 인습의 혼합체인 주인공 촬스는 자신의 시대를 대표하고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는 정열을 관능과 동일시하고 상상력은 단순한 공상과 동일시

하여 금지하고 있었다.

타자의 욕망인지 자신의 고유한 욕망인지는 반드시 그것을 실현해 보아야하는

사후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