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이 2014. 4. 6. 12:08

 

사랑이 아닌 사랑


스피노자-호의란 타인에게 친절을 베푼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소설의 주인공들 세 사람들에게 있는 미성숙하고 유치하기까지 한 성욕이

이 글의 주제다.  이런 사실을 직시했다면 나오코는 정신병원에 갇혀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욕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포장한 것이다.  섹스를 나누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도 역시 섹스와 사랑과 관련된 진실을 모르고 아름답고

격조 높은 고급 포르노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 섹스에 대한 갈망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대치된다.

 

나오코의 요양원 룸메이트가 도피의 세계를 찾는 영혼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분명 자신의 뒤틀린 부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건지도

몰라. 그 뒤틀림이 불러일으키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고뇌를 자기 내면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여기 들어온 거야. 여기

있는 한 우리는 남을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고 남에게 아픔을 당하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뒤틀림이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이런 점에서 외부 세계와 이곳은 달라.  외부 세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뒤틀렸음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지. 그러나 우리의 이 작은 세계에서는

뒤틀림이야 말로 존재의 조건이야. 인디언이 머리에 자기 부족을 상징하는

깃털을 꽂듯이 우리는 뒤틀림을 끌어안고 있어,

그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용히 사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