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Down the Bones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여
수용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집중력을 가져야 한다.
세부묘사의 힘-당신의 삶을 이루는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 네 라고 대답하라. .....빌딩위로 구두를 벗어 던지고 싶을 정도로 행복한 순간을 맞이해 본 사람이 있는가. 글쓰기와 사업가의 길 사이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이 경험한 인생에 대한 확신을 키워나가야 한다.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어라.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 내면의 세계가 외부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은 참말이다. 눈물을 흘리는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눈물을 넘어 진실을 파고 들라. 자신의 의식차원을 넘어선 글을 쓸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 사물의 진실을 나타낸 것이 된다. 그래서 이런 글은 에너지가 넘칠 수밖에 없다. 당신의 글쓰기를 누르던 자아라는 짐을 벗어 던지는 순간 당신은 인간적 감정과 인생의
단면이라는 파도를 타고 더 큰 조류를 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는 재갈을 물리지 않은 야성이 숨 쉬는 공간이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곳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글은 인생의 경험들의 축적인 퇴비에서 한 송이 붉은 튤립을 키워낸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고 그것을 받아들여 준다면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은 없을 것이다. 안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 쏟아지는 비평도 무섭지 않다. 삶의 재료를 삭혀서 퇴비로 만드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시작이다.
글쓰기 목록 1; 방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빛의 성질에 대해 써 보자. 2‘ 기억이 난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3;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아주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을 하나 골라서 정말 사랑하는 것처럼 적어보라. 아주 좋아하는 입장과 싫어하는 입장과 중립적인 입장에서도 써 본다. 4; 한 가지 색, 예를 들어 분홍색만을 생각하며 15분 동안 산책해 보자. 5; 오늘 아침 당신의 모습을 적어보자. 6;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장소를 시각화시켜 보자.-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관찰자의 눈으로 세부적인 것을 지켜보라.-어떤 색, 무슨 소리, 어떤 냄새로 채워져 있는지를. 7; 떠남에 대해 써보자.-이혼, 집을 나설 때, 친구의 죽음, 등등.. 8; 당신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9;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누구 였는가. 10; 당신이 몸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써보라. 11; 당신의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묘사해 보라. 12;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 적어 보라.
수영하기, 하늘에 떠 있는 별, 경험했던 가장 무서웠던 일, 초록빛으로 기억되는 장소
성에대한 의식이 생기게 된 동기, 혹은 최초의 성 경험, 신의 존재나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았던 개인적 체험, 당신의 인생을 바꾼 책이나 문구, 육체가 가진 한계와 인내,
당신이 스승으로 섬기는 인물
13;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아무데나 책장을 열고 마음에 드는 한 줄을 골라 적은 다음 거기서부터 계속 이어서 글을 써보자. 14; 당신이 동물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어떤 동물인가
토푸(tofu) 와의 싸움 토푸는 콩으로 만든 치즈다. 진하게 농축되었으면서도 맛이 순하고 부드러운 흰 치즈. 하지만 이 치즈를 구하려 애쓰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치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재하지 않으나 우리의 마음속에서 실재하는 것처럼 행세하는 허상이다. 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말할 때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아주 따뜻한 마음과 나약할 정도로 아름다운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이미 시 속에 살고 있다. 우리들 속에는 다른 이들의 삶도 들어가 있다. 열린 마음으로 마음을 열어 두고 있을 때이다. 내가 어떤 사실에 겁을 낸다면 내가 쓰는 글도 왜곡 된다.
내면의 잠재능력에 가 닿아라.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쓰기 그 행위 그 자체에 있다. 좋은 글이나 시를 쓰고 거기서 떠나라.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내가 아니다. 내 몸을 빌려 밖으로 표출된 위대한 것이다. 논리에 붙들리지 말고 뛰어넘어 모든 것을 수용하라. 왜라고 끊임없이 묻거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동시에 마음은 모든 것에 수용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엄청난 에너지를 종이 위에 쏟아 붓는 것이다. 글쓰기에 좋고 나쁜 것은 없다. 작가는 두려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써 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동차를 먹는 사람을 창조해 낼 정도로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만이 개미를 코끼리로 만들고 남자를 여자로 바꿀 소 있다. 이런 사람만이 각각의 분리되어 있는 형태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형태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공통된 무언가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은유란 논리나 지식의 영역이 아니다. 개미 한 마리와 코끼리 한 마리 안에서 공통된 어떤 하나를 볼 수 있는 영역이다. 은유의 세계는 안개 낀 저녁 가로등이 켜진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처럼 모든 사물의 경계가 사라진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절대 자신의 에고를 남들에게 보여주려는 연출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의 인간임을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가 있다. 이런 이유로 글쓰기는 종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이어도 괜찮다. 작가란 종국에는 자신의 강박증을 쓰게 되어있다. 나를 괴롭히는 요소들을 적는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강박증에는 힘이 있다. 글을 쓸 때마다 언제나 같은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강박증의 변두리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은 시작된다. 당신을 괴롭히던 강박증이 자신을 위해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강박의 조정을 받는다. 강박증은 엄청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 힘을 거부하지 말고 이용하라. 세부묘사는 글쓰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다. 우리의 삶 모든 순간순간이 귀하다. 이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작가의 일이다. 우리 인생의 세부 그림은 기록으로 남아야할 가치가 있다.
삶의 세부 사항을 묘사하는 중요한 까닭은 효율성만을 주장하는 문명의 이기와 모든 무자비한 폭력에 항거하기 위함이다. 세부묘사는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는 것이다. 글이 글을 쓰도록 하고 자신은 사라져야 한다. 당신은 그저 당신 속에서 흐르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 내고 있을 뿐이다. 최고의 작품은 감상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감상적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파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 파리를 사랑할 수도 있겠지만 파리와 결혼하지는 말아야 한다.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의지할 대상이나 버팀목은 대지, 공기, 햇빛, 아침의 침묵등이다. 말하지 말고 보이라는 의미는 정직, 진실, 증오, 사랑, 슬픔, 인생, 정의 등의 단어들을 입에 올리지 않고도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글을 읽은 사람이 분노를 느끼게 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정을
느끼게 해야 한다. 글쓰기는 심리학이 아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독자의 손을 잡고 슬픔과 기쁨의 골짜로 들어가야 한다.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글은 당신이 그 글 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냥 꽃이 아니라 그 꽃의 이름을 붙여 주고 불러 주어 그 사물의 존엄성을 지켜준다.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순수의 전조에서는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모든 사물들의 이름을 배우라. 작가는 건축가이고 프랑스 요리사이며 농부여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작가는 이런 것 중 어느 것도 아니다.
글쓰기는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파리 카페에서 글을 쓰는 광경은 얼마나 일상적인가. 어쩌면 많은 사람이 있는 곳이 오히려 혼자가 될 수 있게 해준다. 글 쓰는 자체가 우리의 불완전성을 자꾸 들추어내기 마련이다. 작가의 방은 곧 그 작가의 마음 상태의 표시라고 말한다. 메리델 르 수에르는 80대 나이에도 몇 편의 장편소설과 단편 그리고 시집을 쓴 작가다. 그녀에게는 모든 장소가 글을 쓰는 장소다.
에로티시즘을 쓸 때도 긴장을 풀고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거창한 주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일례로 에로티시즘의 경우.. 무엇이 당신 몸을 뜨겁게 만드는가. 성과 관련된 과일 이름을 아는 대로 모두 적어 보라. 당신이 사랑에 빠졌을 때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 당신의 신체 중에서 가장 성적인 곳은 어디인가. 당신이 맨 처음 성애를 느꼈던 기억은? 자신이 사는 마을을 순례하라.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을 쓰는 사람이다.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있게 만들고 단순한 존재이지만 특별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는 것이다. 글쓰기의 심장 안에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인생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이 하나씩 있다. 나의 두려움은 고독이다.
정말 어떤 일에 결심이 섰다면 어떤 자세로 임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물론 힘이 들겠지만 잘 안 될 경우 나한테는 안 맞는것 같다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잘못된 태도다.
만약 누군가가 쓰러뜨리고 쓰러진다 해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또 쓰러뜨리더라도 다시 일어나라.
당신이 얼마나 많이 쓰러지든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그것만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작가의 미래에 대한 의심과 의혹은 고문이다. 라는 의심에 먹히지 말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글쓰기는 친구다. 글쓰기는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 당신이 셀 수 없이 많은 글을 버릴 수는 있어도 글쓰기가 당신을 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지금 이 순간 , 더 이상의 이유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건 당신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만이 당신을 건강하게 살아있게 지탱해 준다. 봄이 되면 튤립이 아무 이유 없이 피어나는 것처럼. 사물은 아무런 이유 없이 일어나고 또 사라져 간다. 이제 대단한 무언가를 쓰고 싶은 당신은 자신을 누르고 있는 것에서부터 바깥으로 빠져 나와야만 한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선원의 베이커 선승은 왜 라는 것은 좋은 질문이 아니다 라고 했다. 사물은 그냥 있는 것이다. 헤밍웨이도 “왜” 가 아니라 “무엇이” 더 중요하다라고 했다. 글쓰기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너와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 우리는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많은 현실이 있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나면 그 글을 완전히 떠나보내라. 그럴 수 있을 때 작가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대중은 진실의 단면을 보고 싶어 한다. 이방인 만이 가지는 열정.......
시의 형식과 인생의 형식 글의 규칙을 파기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신뢰할 수 있어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이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단하지도 구조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다. 우리의 삶은 언젠가는 당도할 죽음을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경계를 확장시켜라. 대중을 통제하는 최상의 길은 그들에게 해로운 일을 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중은 통제력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소와 양을 탁 트인 초원에 풀어놓는 것이 소와 양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 인 것처럼 글쓰기에는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세게 고삐를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아무 이름도 없는 곳에서 철저하게 길을 헤맨 다음 다시 돌아와 글로 나타나게 하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작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를 발전시키려면 다른 운동처럼 연습만이 지름길이다.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글을 쓴다. 글에는 에너지와 생동감이 있어야한다.
자신을 속이는 글을 쓸 수는 없다. 법에 얽매이기 보다는 살아있는 존재를 향해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글쓰기 훈련에 자신을 충실하게 정직하게 몰입하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에도 몰입할 수 있다. 종이 위에서 걸어 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13세기의 선승 도겐은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라고 했는데 이는 글쓰기에
가져야할 궁극적인 태도와 신념이다.
질기고 단단한 마음 속 생각들을 부수어 낼 때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온다. 좋아하는 음식 기억나는 음식은 좋은 글 재료다.
외로움을 이용하라. 고독은 익숙해 질 수 없다.
그 속에 서 있을 수 있기 위해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의 글이 또 다른 외로운 영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손을 뻗으라.
작가의 변신은 무죄다. 평상시에 하지 않는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다.
더 큰 자유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라.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더 이상 회피하지 않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뿌리로 돌아가는 일은 좋으나 그 뿌리에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새로운 경험을 해야 새로운 글을 쓸 수 있다.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던가. 글을 시작할 때는 이야기를 할 때처럼 당신 이야기를 글로 적어보라 글을 시작하는데 애를 먹은 경험이 있다면 대화하듯 써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벌거벗은 자만이 진실을 쓸 수 있다.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은 아름답다. 우리 안에 들어 있는 목소리와 접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정직한 고결함과 세심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능력과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고 바로 그 시각으로 우리 작품을 보기 때문에 자신의 글이 우수하다는 걸
알지 못한다.
바깥에서 보여 지는 모습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 훨씬 쉽다. 우리가 자신이 좋은 글을 썼다는 주장을 하게 될 때 자신 속에 들어 있는 진정한 본성과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사이를 가로막던 장애물을 치워버릴 수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좋은 글을 막는 벽을 뚫고 앞으로 나가 그 글이 바로 나 자신임을 주장할 능력이 있다. 라고 말한다.
스스로 작품을 평가하는 잣대를 가지라. 작품 속에서 발가벗는다는 것은 자신을 조절하지 않는 것이다. 사무라이가 되어 글을 쓰라. 사무라이는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라는 뜻이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 평범한 존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의 위대함이다. 산만한 정신을 뚫고 지속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훈련이다. 스즈키 선사가 열반하기 바로 직전에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라고 한 말은 진한 진실이며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