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erpt

우스운 사랑들 - 밀란 쿤데라

성연이 2017. 9. 8. 16:32


우스운 사랑들

학자인 "자투레 츠키"의 아내는 단순하고 무지하다.

그아내는 무능한 남편을 대단한 존재로 믿으며 존경한다.

자신은 무지한데 남편은 늘 무언가에 전념하고 있는 학자이기에 무한 신뢰를 한다.
어느 날 그 부부는 나를 찾아 와 자신의 논문에 대한 평을 써달라고 부탁 한다.
그러나 평을 해 줄만한 수준이 아니기에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그들을
피하곤 한다.

나는 해야할 거짓말과 해서는 안될 거짓말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아는 것만큼의 양과 질에 따라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
삶의 의미란 바로 그렇게 삶과 더불어 오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에는 모두 각각의 헤아릴 수 없는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자고새는 사냥개에게 자기 몸을 내 줌으로써 새끼들을 보호한다.
인간에 못지 않은 대단한 모성애다.
인간의 비이성이라는 장벽은 이성으로 아무리 공략해봐야 무너지지 않는다.
스스로 거짓말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거짓말은 아무 것도 감추는

것이 없기에 진실하다고 믿는 거짓말이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면 자신이 비참해 진다.
삼백 페이지를 쓴 후 거기서 삼십 페이지만을 간추린다거나 이미 다 알려진

것들이거나 다른 사람들의 것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학자다.
그렇기에 나는 자투레 츠키의 논문 평을 써 줄 수도 평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평을 쓰지 않으려는 핑계들이 나중에는 거짓말을 한 것이 되고 만다. 

이런 나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아무도 이런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나의 여자도 나를 거짓말쟁이라며 비난하면서 떠나버렸다.

사람들의 사랑은 이처럼 우습다.


 

영원한 욕망의 황금사과

나는 모든 면에서 질서와 객관성을 지키며 애호가보다는 전문가를 존중한다.
우리는 젊은이들이 하는 행동들을 언제쯤 포기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아내가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를 유혹하는 즐거움으로 사는 

마르틴과 여자에게 별 관심이 있는듯 없는듯 그저 마르틴을 따라다니는 나.
마르틴이 유혹하고 만날 약속까지 해 놓은 여자들은 모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둘은 언제나 약속 장소에 함께 나가지만 번번히 헛탕이다.

이제 마르틴은 단지 여자를 따라 다니는 일을 즐길 뿐이라는 변명을 해 댄다.

있지도 않은 나의 여자에 대해 귀찮게 추궁하는 그에게 상상의 여자를 소개

하고 다시 그녀에 대한 유혹의 꿈을 키우는 마르틴... 
그것은 가짜이며 먹을 수 없는 욕망의 황금사과다.


 

히치 하이킹 게임

부끄러움이 많은 아가씨는 남자에게 진지하면서도 어쩌다 가볍지 못한 

행동을 하곤 한다. 사랑하는 존재가 주는 기쁨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혼자이어야 한다.   평소에는 단단하게 빗장을 질러 두었던 자신이 어떤

게임이라는 명분 앞에서는 갑자기 담대해지고 닫혀있던 마음도 활짝 열려 버린다. 

이 때의 느낌은 책임이나 근심 걱정도 전혀 없는 생소한 것이다.

다음을 늘 두려워하던 그녀가 갑자기 뛰어든 다른 삶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아무런 약속도 지킬 필요가 없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의 자신은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그녀가 사실은 바로

자신인 것이다.  정숙함을 벗어버린 이 쾌감..

두려운 장래 같은 것도 없는 이 홀가분함...

그런데 열린 빗장 안으로 들어 온 남자는 이런 류의 여자들에게 이미 너무

식상해 있던 남자다.  그 게임은 그녀에게는 함정이 되어버린다.
남자는 그녀가 자기가 예상했던 순진 무구한 여성이 아니라 지금까지 혐오해

오던 과거의 여느 여자와 다름없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더 함부로 대한다.

그래도 여자는 이건 게임이기에 가볍개 넘기고 아무 것도 두렵지 않기에

아무런 방어도 없으며 마약에 빠진 듯 오직 그 게임에만 몰두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하던 일, 늘 불안해 하며

회피해 오던 일로서 감정과 사랑이 없는 사랑 행위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식의 저 한쪽 구석에서 그녀는 이번과 같은 쾌락을 느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전율하며 어떤 공포 같은 것마저 느낀다.


 

콜로키움
자기가 의식하고 있는 것에만 책임이 있다면 바보들은 애초에 

아무런 잘못이 없게 된다.
거세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조르주 상드와 프레데릭 쇼팽처럼.


 

20년 후의 하벨박사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 중의 하나는 허둥대며 서두르는 것이다.
사랑과 성에 대해 최고의 전문가인 하벨박사의 말이다.
자식이 주는 기쁨은 다른 기쁨들로 대신하지 못하며 설사 대신하는

기쁨이 있다 할지라도 그 기쁨은 금방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 에로틱한 매력은 균형보다는 독창성에서 생겨난다.
절제보다는 풍부한 표현에서, 진부한 귀여움보다는 튀는 듯한 비정상적인

것에서 생겨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후광은 삶에 영향을 준다. 

그것은 한 존재를 돋보이게 하는 그 무엇이다.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을 때 우리는 간절히 그것을 원하게 된다.
늙고 돈이 많은 하벨에게는 그 대상이 아름다운 여 배우인 아내가 된다.
함께 다닐 때 그가 느끼는 말 할 수 없는 당당함이 바로 그것이다.
그 여자를 선택할만한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하벨에 비해 열등감으로 절어 있는 젊은 시골 기자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 본들 자신은 그런 후광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가 만약 같은 선택을 할지라도 하벨박사만큼의 만족에는 이를 수 없다.
시골 기자에게 박사 하벨은 처음부터 올라가지 못할 나무일 뿐이다.


 

에드바르트와 하느님

교사인 에드바르트의 여자는 맹신자이며 혼전순결을 중요시 하는 여자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진지하게 믿을 수 없을 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래서 인간은 신을 열망하게 된다.
이유는 신 앞에서 만큼은 잘 보이려 노력할 필요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족하기 때문이다.  교사인 남자는 여자를 따라 교회에 갔다가 여교장의 눈에 띄게 된다.

신보다는 인간의 의지를 믿는 시대였기에 학교 측에서는 종교를 금하고 있다.

그렇다고 갑자기 무신론자가 될 수는 없기에 자신은 종교인이지만 개화할 수도

있다며 학교에서의 면직을 피할 여지를 좀 남겨둔다.

이런 태도가 맘에 들은 여교장은 그를 자기 집으로 초대까지 한다.
초대받은 그는 전혀 매력없는 여교장의 유혹을 받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원하지

않는 섹스까지 하게 된다.

남자는 구토를 느낀다.
에드바루트의 여자는 사실과 전혀 다른 헛소문을 듣고 지금까지 종교적으로

미온적인 이 남자가 비로소 신념을 갖게 된 것으로 알고 매우 기뻐 한다.

 

여자는 성당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슬픔을 느끼는 그 순간

슬픔의 까마득히 깊은 바닥으로부터 신의 살아 있는 실제의 모습이

떠 오르는 것을 본다.  믿음도 사랑도 이와 비슷하게 신념을 만들게 된다.

그녀는 이제는 에드바르트를 믿고 자신을 허락해도 된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그의 끈질겼던 구애를 드디어 받아들인다.

이제 한 몸이 되었고, 여자는 깊은 행복감에 도취된다.

그후 그 남자는 곧 그녀를 떠나 버린다.
지금까지 그가 그토록 그녀를 원했던 것은 당시의 그의 격한 결핍 때문이었다.

그의 결핍이 해결되었으니 그는 그녀에게 담담해 진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단지 결핍이었다고...
우리는 무엇에건 결핍을 느끼지 않아도 될 상황에 늘 있어야 한다.

결핍!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