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백석과 신석정

성연이 2011. 9. 7. 11:09

 

신 석정의 詩作에 가장 영향을 준 시집이 무어냐는 질문이었다.

대답은 백석의 사슴이었으며 다음이 정지용, 다음이 서정주라고 했다.

사슴은 백석이 어린 시절의 시각으로 본 고향의 정겨운 모습들이다.

그의 시는 다소 여린 듯한 감성으로 다가오지만 

밑바닥에는 역설적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전달해 주고 있다. 

백석과 신 석정 두 사람은 서로 만난 적이 없지만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신석정은 백석 시의 석류알같은 아름다운 詩語와 문학적 감성을 사랑했지만 

다소 여린 듯한 그에게 충고를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백석을 수선화에 비유하면서 한 편의 詩를 써서 조선일보에 보냈다.  

 

수선화/신석정

 

수선화는

어린 연잎처럼 오므라진 흰 수반 위에 있다

수선화는

암탉 모양하고 흰 수반 위에 있다

수선화는 

솜병아리 주둥이같이 연약한 움이 자라난다

수선화는 

아직 햇볕과 은하수를 구경한 적이 없다

수선화는 

돌과 물에서 자라도 그렇게 냉정한 식물이 아니다

수선화는 

그러기에 파아란 혀끝으로 봄을 핥으랴고 애쓴다

 

그리고는 '눈 속에 사슴을 보내주신 백석 선생께 드리는 수선화'라는 부제를 달았다.

백석의 외모도 수선화를 닮았다.

그의 옆모습은 서구적인 이미지의 조각같다고 한다.  

이 시 한편은 신석정이 본 백석의 인간과 문학 모두가 담겨 있다.

흰 수반은 백석 시의 정결, 고귀, 순수를 상징한다.

흰 수반 위에 앉은 알탉은 정갈한 알/시를 낳는 백석의 모습이다.

햇볕과 은하수, 곧 험한 세상을 겪어보지 못한 백석에게

몸으로 세상을 느끼고 시를 써달라는 암시였을 것이다.

파아란 혀끝으로 봄을 핥으랴고 애쓰는 백석에 대해 용기를 주려는 대목이었다.

 

신석정이 수선화를 신문에 싣고 20일 후

백석도 같은 신문을 통해 답장을 보냈다.

 

고요하니 즐거운 이 밤

초롱초롱 맑게 개인 샘물같은 눈으로

나는 지금 당신께서 보내주신

맑고 고운 수선화 한 폭을 들여다 봅니다.

들여다 보니

그윽한 향기와 새파란 꿈이 안개같이 오르고

또 노란 슬픔이 냇내같이 오릅니다.

나는 이 긴긴밤을 당신께

이 노란 슬픔의 이야기를해서

보내도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