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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Excerpt 2013. 11. 4. 16:40
17세기 가장 위대한 두 철학자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서로 견해차이가 뚜렷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신을 향한 사랑 속에서 행복을 찾는 반면에
라이프니츠는 우리를 향한 신의 사랑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신이 없는 세상에서 이성을 지닌 인간들을 위한 철학이고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신의 지위를 복원하기 위한 철학이다.
스피노자
그는 금욕적인 관능주의자, 정신적인 유물론자, 사교성 있는 은둔자, 세속의 성인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그의 삶은 그리도 훌륭할 수 있었는가...
지성 개선론의 삶의 규칙 첫 번째는 인류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 두 번째는 건강을 지키는데
필요한 만큼만 또 마음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을 만큼만 육체적인 쾌락을 즐겨야 한다는 것.
세 번째는 돈이나 재화는 생활과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강건한 정신을 유지하는 목표를
이루는데 꼭 필요한 만큼만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니타스의 감정은 단지 덧없는 불만족의 느낌이 아니다..
허무라는 공허의 감정이며 절대적 무에로 떨어질지도 모를 가능성 즉 아무런
의미 없이 무의미한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 삶과의 비참한 조우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 오로지 신만이 실체이며 모든 피조물은 양태일 뿐이다.
마음은 순전히 신체의 관념이다. 인간은 전혀 자유롭지 않다.
저속한 무리는 창조된 사물들을 가지고 철학을 시작한다.
데카르트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고 스피노자는 신을 가지고 시작했다.
실체는 일체의 채굴이 멈추는 지점이다.
즉 모든 탐구가 종착점에 도달하는 지점인 것이다.
스피노자는 무한한 속성을 가진 그 실체가 바로 사실상의 신이라 했다.
신은 홀로이며 그 자체로 존립하며, 그 자체를 통해서 생각될 수 있는 존재다.
인간은 그 어떤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한 자유롭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도 자유롭지 않은 존재다.
격분한 공동체 앞에서도 결코 침착함을 잃지 않게 해준 섬뜩한 자부심.
스피노자는 행복이 곧 덕이며 자유라고 말한다.
인류는 감정의 바다 위를 떠다니며 난타당하는 존재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삶의 참된 의의는 능동적인 삶을 사는데 있다.
행복은 불가파한 것들을 참아내고 수용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절대적으로 필연적이다.
덕은 그 자체가 보상이기 때문에 굳이 저승이라고 하는 곳에서 추가적인
보상이 주어지길 바랄 필요가 없다.
라이프니츠
그의 철학은 존재의 방식이 아니라 공공복리에 공헌하기 위한 수 많은 도구 중 하나였다.
“정의는 현자의 자선이다.” 일생동안의 좌우명이자 철학체계 전반의 기반이었다.
그는 세상에 진정한 철학적 갈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나쁜 문법만 존재한다고 했다.
철학은 신과 행복하게 합일하는 경험이 아니라 평온한 고요에 대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했다.
종교 역시 이성이 토대이며 기독교 공화국은 이성의 제국과 같은 것이다.
그의 정치학은 신정(神政)(theocracy)이며 신구 교회를 재통합하는 일이었다.
실체에는 그 안에 반드시 비 물리적인 무언가를 지니고 있기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성체 변화는 가능하다고 했다.
이것은 곧 세상 만물에는 영혼이 부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은 신학을 하기위한 필수적인 출발점이라 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의 불멸성, 신의 선성 같은 주장이나 성체변화 논증과는 달리
교회를 출석하거나 하는 신앙인의 모습은 없었다.
이는 그의 신앙 고백이 아니라 공공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주변과 조화를 너무나 잘 했다.
그의 자기애의 이면에는 타인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자아가 있었다.
실제로 그는 복지국가의 개념을 전파한 최초의 사도이기도 하다.
인간은 새로운 신이다. 인간은 작은 신성을 지닌 하나의 우주다.
즉 모사된 신이자 원형적인 우주라는 것이다.
이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규정하는 것이다.
넓이나 형체가 없으며,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는 궁극적인 실체로서 모든 존재의 기초를 말한다.
모나드(그)는 단일성이다. 모나드는 창이 없다. 모나드들은 밖을 내다불 수 없으며
누구도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모든 모나드가 한 순간 번쩍인 빛 속에서 한꺼번에 생겨나게 되었고 만일 모나드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들은 마찬가지로 한순간 번쩍일 소멸의 빛 속에서 모두 함께
사라져야만 한다고 했다. 그의 철학은 본질적으로 안도의 형이상학이다.
신이 우리를 돌보고 있으며 우리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철학은 그가 학창 시절에 세상을 향해 처음 털어 놓았던 안정에 대한 갈망과
부성애 적 통솔에 대한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후대의 철학사에서 그의 철학이 지금과 같은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 것은 이렇듯
한 사람의 심장에서 터져 나온 너무나 인간적인 외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을 부정하면서 성자처럼 살아가는 스피노자,
신의 변호인이며 세석적인 출세와 명예를 쫓는 라이프니츠다.
17세기 당시의 신권정체에 반하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던 스피노자,
30년 전쟁 끝에 폐허가 된 독일의 안정을 위해 신권정체를 주장한 라이프니츠.
그들은 단 한번 헤이그에서 라이프니츠가 스피노자를 방문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의 철학의 중심은 스피노자의 철학이었다.
유대인인 스피노자는 유대 공동체에서 파문된 후 렌즈 수공기술로 살아가는 세속의 성자였다.
그에 비해 라이프니츠는 21살의 어린 나이에 법학 박사가 되어 정치에 입문
했으며 어려서 아버지를 여윈 그는 아버지를 대체할 보호막을 찾았다.
스피노자의 검소한 생활에 비해 10배가 넘는 연봉을 받으며 인류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라이프니츠의 노력은 번번히 자신의 이해와 충돌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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