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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는 ‘네메시스’의 의미를 “운명, 불운, 또는 어떤 이를 골라
희생자로 만드는 는 힘”이라고 했다
살면서 우리는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한다.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 뿐이다.
살아오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는 있었는가.
양심은 귀한 것이지만 책임 영역을 넘어선 것에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건 귀한 게 아니게 된다.
두려움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고 타락시킨다.
사람들은 끝임 없이 의식해야하는 위험한 상태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철저하게 합리적인 남자에게만 있는 안정감이라는 것이 있다.
나와 다른 불구자의 삶이 어떤 건지 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영혼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일을 해야 한다.
"폴리오"라는 전염병이 돌자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하게 여러 아이들과 '버키 캔터'의
삶을 짓밟았지만 버키를 무너뜨린 진짜 네메시스는 그의 가혹한 의무감,
병적인 죄책감, 엄격한 선善에 대한 집착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버키는 아내를 만나자 그동안 유일한 인생의 드라마였던 폴리오가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고 자신의 운명을 비난하던 일로부터도 멀어졌다.
방학 동안 포코노 산맥의 인디언 힐 유대인 소년 소녀 캠프에 교사로 가 있던
버키의 여자친구 마샤는 뉴어크에 남아 있는 버키가 폴리오에 걸릴까 걱정이 되어,
아이들 놀이터 감독따위 그만두고 이곳으로 오라고 버키에게 말한다.
그러나 버키는 폴리오가 만연해 있는 이곳에 아이들을 두고 혼자 떠날 수는
없다며 망설이고 있는 중에 마샤의 아버지가 설득하는 바람에 충동적으로
인디언 힐 행을 결심하게 되고 마샤에게 청혼까지 한다.
그러나 그는 곧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버키는 혼자 영화관엘 잘 다녔다.
일요일이면 맛있는 포르투칼 음식을 먹고 날씨가 좋으면 공원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하고 매일 텔레비전의 뉴스를 보곤 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버키의 유일한 이 행복들이 끔찍하게 황량할 수도 있다."
세상에서 망가진 착한 소년만큼 구원하기 힘든 사람은 없는 법이다.
이유는 오랫동안 자신만의 상황감각만을 혼자 키워왔기 때문이며
간절하게 갖고 싶었던 그 어느 것도 가져보지 못하고 살아 온 탓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천성적으로 선하고 엄격해지면 필요 이상의
죄책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인생 어디에서 방식을 찾아야 하는지 몰라서 방황하곤 한다.
누구도 상대해 주지 않아 늘 혼자였던 바보 ‘호러스’가 바라는 유일한 소망은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악수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은 단지 삶을 사랑할 뿐이다.
버키는 이런 아이들을 사랑했다.
무서운 전염병이 만연해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고뇌는 개인에게는
무고한 것이지만 버키는 내면에서 전염병에 희생된 자들의 고통의 소리를 듣곤 했다.
- 필립 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