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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침팬지--재래드 다이야몬드-Excerpt 2014. 2. 10. 18:39
네안테르탈인은 4만년여 원시상태로 살았다. 유원인에서 원시인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로 변화했고 유인원에서 원시인으로의 최초의 변화는 400만 년 전쯤의
일이다. 170만 년 전에는 호모 에렉투스(직립형 인간)가 생겼고 크로마뇽인의
등장은 약 4만 년 전 일이다.
인간의 성 행동 진화를 보면 많은 여성은 커다란 페니스보다 남성의 목소리나
다리 어깨 등에서 훨씬 더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인간의 은밀한 배란과 은밀한 섹스에 대한 생물학자들의 주장 중에는 배란과
섹스를 드러내 놓고 하지 않는 이유는 인류 사회의 협력 행동을 위해서라고 한다.
만약 동물처럼 여성의 배란이 어떤 형태로든지 겉으로 드러나거나 혹은 드러내
놓고 섹스를 하게 된다면 인간사회의 협력과 질서는 깨질 수밖에 없다.
작은 노획물을 잡은 수컷 침팬지가 발정하지 않은 암컷보다는 발정중인 암컷에게
고기를 더 많이 분배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알 수 있다.
만약 남성이 배란의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면 그는 아내가 배란하고 있을 때만
수정시킬 수 있을 것이며 아내가 발정하지 않을 때는 안심하고 다른 여자를
유혹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여성은 배란을 숨기게 되었고 남성 자신이 정말로
아버지인지 아닌지 걱정하지 않도록 남성을 대함으로써 남자를 묶어 두는 쪽으로
진화 했다는 설이다. 배란이 은폐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인간의 사회는 달라
졌을지도 모른다. 성 관계를 가지면 성관계가 없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남녀 사이
보다 유대가 강해지는 것은 확실하다. 배란이 은폐되어 있고 성이 항상 수용할
수 있으면 번식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유대로서의 섹스의 새로운 기능이 촉진된다.
결혼 상대의 조건에서 인간은 어떻게 배우자를 선택 하는가
우리가 찾는 특정의 “서치 이미지”(search image) 란 자신이 찾는 물건이나 사람을
다른 물건이나 사람 중에서 재빨리 알아내는 데 필요한 심상을 말 한다.
인간은 왜 이성에 관한 자신만의 이상형을 갖게 되는 것인지 이를테면 몇몇 의존적인
남성은 자신의 어머니를 닮은 여성과 결혼하는데 이는 대표성이 있는 것인가.
그러나 결국은 사람들은 닮은 사람끼리 결혼한다.
닮은 사람끼리 결혼하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결혼을 단지 좋아서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종의 협상이기 때문이다. 쌍방의 종교나 정치적 견해 성격이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그 협상은 잘 진행된다.
이상형은 유전인가 학습인가.
태어나면서부터 6세까지가 성적 선호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대개의 사람은 양친과 형제자매 어릴 적 친구의 외모에서 호감을 찾는다.
혼외정사의 과학
역사상 어느 시대에도 간통만큼 빈번하게 살인이나 비극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없다.
혼외정사와 혼전 정사는 다르며 “혼외정사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만난 것은 분명하지만 혼혈이라고 생각되는 뼈는 나오지 않았다.
죽음과 노화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40세 이상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은 거의 없었지만 크로마뇽인은 60세 이상까지도
살았던 것으로 보아 노화 속도가 늦추어진 것은 대약진 때부터 이었던 것 같다.
인간의 몸은 항시 많은 세포를 교환한다. 인간의 장의 내부 세포는 며칠에 한 번씩
방광의 내부 세포는 2개월에 한 번 적혈구는 4개월에 한 번씩 교환된다.
단백질 분자는 모든 레벨에서 끊임없이 교환되고 있다.
사람의 얼굴은 1개월 전에 찍은 사진과 똑 같겠지만 그 몸의 분자는 1개월 전과는 다른 것이다.
수명이 한계에 이르는 것은 모든 부분이 전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생의 묘약이 발견되었더라면 인류는 심각한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물욕에 집착한 무리, 관능에 집착한 무리, 세속적인 무리, 그런 하찮은 생을 연장
하려 한다면 이 세상은 악의 소굴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특수성
예술의 기원
모든 예술은 전혀 무용하다.- 오스카 와일드-
농업은 축복인가
농업의 시작으로 음식물 생산량이 증가하고 음식물의 축적이 가능해졌지만 동시에 사회적,
성적인 불평등, 질병, 전제 정치 등 현대의 인류를 괴롭히는 여러 가지 악의 시발이 되었다.
농업은 1만 년 전 빙하기 말경부터 시작 되었다.
농업은 영양실조, 기근, 전염병 같은 부작용도 지니고 있다.
농업에 의해 계급 차별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남녀의 불평등도 더욱 심화되었다.
인간과 동물의 의사전달에 있어서 언어가 아무리 많은 어휘를 가지고
있더라도 문법 규칙이 없다면 언어라고 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격리되어 자란 아이들은 늑대 소년 아베론 처럼 말을 하지
않고 언어를 발명하거나 발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외부 세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동족에게도 정복자였다.
동물은 생각보다 지구의 아주 극소수 지역에 편중되어 분포 되어 있다.
늘어나는 인간의 집단과 종족간의 갈등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는 집단
간의 문화적 특징에 따라서 크게 다르다. 특히 결정적인 요인은 육해군의 기술,
정치 체제, 그리고 농업상의 차이에 있다.
예전에는 문화적 차이의 대부분은 정복자인 선진 민족이 피정복자인 미개 민족보다
유전적으로 우수하기 때문 이라고 믿었지만 유전적 우수성에 대한 증거는 없다.
최후의 첫 대면
1983년까지 외부와 단절된 채 대협곡의 파푸아 인 5만 명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뉴기니의 포레 족에게는 쿠루 병(웃는 병)이라는 풍토병이 있었으며 이 고장의
사망원인 중 과반수(특히 여성)를 차지한다. 1964년 뉴기니 벽지 마을을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는 통나무 북과 전통적인 노랫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80년대에 다시
방문했을 때는 기타와 록 음악 그리고 앰프 소리만 들렸다.
현재 문화적으로 우세한 사회란 단순히 경제적 군사적인 기준으로 삼은 경우다.
소비주의와 환경 개발은 현재에는 쾌적한 삶에 공헌하고 있으나 미래는 별로 밝지 않다.
유럽인이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적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며 동물 집단같은
생물학적 차이 때문은 아니다.
양질의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나쁜 그들의 세균(특히 천연두)과 기술, 문자에 의한 정보
축적과 정치 체제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 대륙 간의 지리적 조건이다.
약 4,000년 전에 말이 가축화 되고 그로부터 수천 년 뒤에 순록이 가축화된 이래
더 이상 유럽의 대형 포유류 중에서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은 없었다.
말은 2,000년~3,000년 후 이륜 전차로 발전하면서 그들은 고대 전제에서 무적의 셔먼 전차 군단이 되었다.
안장과 등자가 발명되면서 훈족의 아틸라 대왕은 로마 제국을 유린했고 징기즈칸은
러시아에서 중국에 이르는 제국을 정복했으며 서아프리카에는 군사 왕국들이 생겨났다.
코르테스와 피사로는 겨우 수백 명의 스페인 인민으로 수십 마리의 말 덕분에
신세계에서 가장 앞섰던 2대 제국 “아스텍”과 “잉카”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1939년 9월 히틀러 침공에 대항한 폴란드 기병대의 돌격이 수포로 돌아감으로써
모든 가축 동물의 군사적 중요성은 6,000년 만에 막을 내렸다.
지리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종의 생물학적 문화적 진화의 기본경로를 규정한다.
지리가 현대 정치사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동식물의 가축화 재배화
속도를 결정하는 역할보다 더 분명하다.
결국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는가는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 규정된다.
현재 전 세계에 있는 5,000개 언어 중 140개만이 인도 유럽 어족에 속하지만 사용
인구의 비하면 140 이라는 숫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종족 학살의 성향
세계적인 제노사이드(특정의 민족 집단의 절멸을 목적으로 하여 그 구성원을 살해
하거나 생활 조건을 박탈하는 대량 집단 살해 행위)의 예로 나치 강제 수용소가 있다.
제노사이드는 생물학과 논리학 심리학을 동원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태즈메이니아 말살사가 있다. 태즈메이니아는 오스트레일리아 남해안에서 320km
떨어져 있고 면적은 아일랜드 정도의 산이 많은 섬이다.
1642년 유럽인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을 때 그 곳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의 원주민과 가깝고
현대인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수준의 기술만을 갖춘 약 5,000명의 수렵 채집민이 살고 있었다.
영국인 바다표범 잡이 어부와 이주자들이 1800년경 이 섬에 도착하자마자 두 이민족의
비극적인 만남은 전쟁의 시작이다. 갈등의 초점은 나치의 대량학살을
정당화하려 했던 구호인 “민족생활권” 이라는 뜻의 “레벤스라움”이 초점이다.
제노사이드의 원인이 되는 동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군사적으로 좀 더 우세한
사람들이 토지를 점령할 때의 약한 사람들의 저항으로 인한 것 같다.
백인 오스트레일리아 인이 태즈메이니아 인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살육했던
예 이외에도 백인 미국인이 암리카 인디언을 아르헨티나 인이 아라우칸 인디언을
그리고 남아프리카 보어인 이주민이 부시맨과 호텐토트 인을 살육한 예는얼마든지 있다.
인류 진화의 원동력은 “인간=사냥꾼” 이라는 가설은 타당한지도 모른다.
1976년~1983년에 걸쳐 아르헨티나 군대가 정치적으로 반대당 당원들과 그 가족
1만 명 이상을 살해한 사건은 동물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초기문자 문명을 살펴보면 제노사이드가 빈번했다는 증거가 여러 문서의 기록에 있다.
그리스와 트로이, 로마와 카르타고,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는 모두 전쟁이 끝나면
남녀를 불문하고 패자를 대학살하든가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노예화하든가 했다.
여호수아의 나팔 소리와 함께 여리고 벽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에서 처럼 아이, 막케다, 립나, 헤브론, 드비르등 다른 많은 도시에서도 주민을
대학살하라는 주의 명령에 따라 그는 모든 주민을 죽였다.
제노사이드가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와 선 인류 유산의 일부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20세기 제노사이드에서는 사람들을 “우리들”과 “그들” 두 카테고리로 분류하는데
그들의 언어, 외모, 습관만 해도 수천 가지의 유형이 있다.
이상하리만치 제노사이드에 대한 소극적인 국제적인 태도가 주목된다.
국제연합(UN)은 1948년 제노사이드가 범죄라고 선언했으나 방글라데시, 부룬디.
캄보디아, 파라과이, 우간다에서 현재 진행 중이며 제노사이드를 반대하는 호소
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구체적인 처벌이나 조치를 한 번도 취한 적이 없다.
무관심을 넘어서 대개의 사람들은 다른 민족에게서 일어난 일에는 모른 체한다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에 대한
일부의 불공정에 대해서는 열광적으로 관심을 보인다.
이러한 제3자의 무반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반응을 볼 필요가 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와 같은 제노사이드 목격자들을 연구해 온 정신 분석가는 그들에게는
“심리적 마비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한계를 넘어선 고통이 감각을 마비시키듯
심리적 고통도 지나치면 감각이 마비된다.
살인자 역시 범행에 대한 죄책감이 쌓이다 보면 희생자나 다름없는 마비가 올 것이다.
제노사이드는 그것을 직접 경험한 피해자나 살인자 모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되어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후손들이나
아우슈비츠 생존자와 베트남 전쟁의 퇴역 군인들을 치료한 심리사처럼 제노사이드에
대해 간접적으로 들은 사람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전문가조차도 듣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면 평범한 사람들은 그 정도가 어떠하겠는가...
제노사이드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 볼 때 제노사이드로 향하는 전체주의 정부를 제어하기는 힘들 것 같다.
현대 무기를 사용하면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희생자를 살육할 수 있고 양복과 넥타이를
입은 채 살해자가 될 수 있으며 인류전체를 위협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제노사이드도 가능하다.
그러나 인터넷, 여행, 텔레비전, 사진 등에 의해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우리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은 희망적인 징조다.
20세기 과학 기술의 진보는 부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반면에 제노사이드를 초래하는
“우리‘와 ’그들‘의 구분을 모호하게 했다는 이점도 있다.
갑자기 역전된 진보
육식 동물은 먹이를 다 먹어 치우지 않고 초식 동물 역시 식물을 필요 이상 먹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인간은 유일하게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다.
인간의 자기 파괴적인 환경의 남용은 근대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 초기부터다.
생태학적 자살을 선택한 문화 국가는 지중해 문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 외에 중앙 아메리카의 고대 마야 문명, 인도 인더스 계곡의 하랍파
문명 등에서는 인구 증가로 인한 생태학적 파국을 맞았을 것으로 본다.
환경파괴는 중앙 집권적인 국가에서 잘 일어나며 소규모로 오래 존속하는 평등
사회에서는 자연 보호가 잘 되고 있다. 이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의 환경을 알지 못하는
지배자에게 부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인식할 무렵이면 이미 때 늦은 일이다.
옛날은 “무지한 황금시대“ 였다면 현대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철의 시대“인 것이다.
우리세대 전 까지는 다음 세대의 가치 있는 생활에 대해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핵으로 인한 대규모 참상과 환경 파괴의 위기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절박한 문제다.
인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종을 멸종으로 몰아갔는지 모른다.
인구 증가가 멈추고 기술 혁신이 한계에 다다르지 않는 한 인류는 멸종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가 생물을 멸종시키는 데는 남획, 종의 이입, 서식지의 파괴,
파급 효과라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아프리카의 코끼리나 코뿔소는 상아나 뿔 때문에 학살되고 있다.
어떤 종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지면 대부분은 그 곳에서 만난 원산 종을 먹어
버리든가 병을 옮겨 멸종시켜 버린다.
서식지 파괴 역시 인간이 종을 멸종시키는 원인이며 최악의 사태가 될 것이다.
파급효과란 어떤 한 종의 멸종이 다른 종의 멸종의 위기를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인간 역시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존재하기 위해 많은 종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핵과 환경 파괴로 인한 대량 살육은 치명적이지만 환경파괴는 이미 시작했다.
인류가 번영하기 시작한 지난 399만 년 동안 그 중 약 150만 년 동안 인간은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다.
그 후 10만 년 전까지는 유럽과 서아시아의 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이 불을 사용하는
대형 포유류의 한 종에 지나지 않았다.
크로마뇽인이 나타난 직후에 네안데르탈인이 갑자기 사라진 점도 제노사이드를 짐작케 한다.
약 1만 년 전 최종 빙하기가 끝날 무렵에 인간은 발전의 속도를 점점 가속화해 갔다.
지금 세계 종말의 조짐으로서 굶주림, 오염, 파괴적인 기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수 많은 종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도 개체군 수준에서 종의 유지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줄어들어 이미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게 되어 있다.
한 편으로는 자기의 이익이나 무지 때문에 환경 파괴를 돕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다른 인간이
한 일을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희망적이다.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명백하게 좋은 확실한 정책들을 과감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몇 십 년 동안 유럽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지성의 소유자 비스마르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끌어내 “나의 아이들과 손자들에게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데 지침이
될 만 한 회고록을 남기고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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